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5·18 민주화운동/전개 (문단 편집) ==== 1980년 5월 16일 광주 ==== 16일은 민족민주대성회의 절정에 달한 날이었다. 오후 2시부터 시작된 집회에는 광주 내 9개 대학에서 온 3만여 명의 학생이 집결해 있었다. 특히 전남대학교 학생들은 교수들과 함께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가두시위를 벌이면서 도청으로 들어왔다. 오후 3시 30분이 되자 학생과 시민 5만여 명이 전남도청 앞 광장은 물론이고 금남로까지 채운 상태에서 박관현이 개회 연설로 집회를 시작했다. 이 날에는 복학생 [[정동년]]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고, 각 대학의 대표는 물론이고 고등학생 대표까지 분수대에 올라와 선언문을 발표하고 연설했다. 일반 시민들도 여기에 호응하여자신들도 분수대에 올라가 하고 싶은 말을 하였으며, 한 학생은 스스로를 '민주시민'이라 지칭하곤 자신이 직접 지은 시를 낭송하기도 했다. [[http://www.518archives.go.kr/books/ebook/1/#page=735|국군장병에게 보내는 메시지]] [[http://www.518archives.go.kr/books/ebook/1/#page=731|전남대학교 언론자유 투쟁위원회의 성명]] 집회가 점점 끝나가고 저녁이 오면서 학생들은 전날 예고한 횃불시위를 준비했다. 박관현은 일장 연설을 하며 횃불시위의 의의를 설명하고 그 필요성을 호소하였다. 총학생회에서는 준비한 400여 개의 횃불을 지급하였고, 학생들은 보다 효율적인 시위를 위하여 여러 개의 조를 편성하여 역할을 나누었다. 그렇게 만들어진 '''횃불시위대는 두 갈래로 흩어져 오후 8시부터 광주 시내를 행진하였다.''' 한 팀은 도청 광장→노동청→광주MBC→광주고등학교→무등산장→산수오거리→법원→동명로로 이동했다가 다시 도청으로 돌아왔고, 또 다른 팀은 금남로→유동삼거리→광주천을 통하여 다시 금남로를 통해 도청으로 복귀했다. 횃불시위대는 행진하면서 구호를 외치거나 노래를 부르면서 흥을 돋웠다. 이 시위는 우려와 다르게 경찰과의 충돌은 없었는데, 그 이유는 박관현이 당시 경찰국장 [[안병하]]와 사전합의를 하였기 때문이었다. 그래서 경찰들은 비록 시위 진압을 위한 장비와 복장을 전부 갖춘 상태였지만 줄곧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. 그래서 집회는 아무런 충돌 없이 진행되어 오후 10시 경 모든 횃불시위대원이 도청 앞 광장에 모였다. 행진이 종료되자 마지막 순서로 학생들은 '5.16 쿠데타 화형식'을 시행했다. 분수대에는 [[박정희]]와 [[전두환]]의 허수아비가 내걸렸고 곧 횃불에 의해 불태워졌다. 시위군중은 박수를 쳤고 박관현은 그 가운데서 마지막 연설을 했다. 그는 3일 간의 집회 기간 동안 수고한 학생, 시민, 경찰에게 감사함을 표했고, 대한민국의 민주화가 조속히 이루어져야 할 것을 강조했다. 그러나 만약 정부가 민주화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다시금 학생들은 거리에 나와 투쟁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. 연설을 끝으로 3일 간의 민족민주화대성회는 막을 내렸다. 집회가 완전히 끝난 후 학생들은 모여 향후 계획을 논의하였다. 여기서 시위를 주도했던 학생회측은 '''만일 휴교령이 내려질 경우 학교에서 만나자'''는 행동지침을 내렸다.[* 여기서 서울의 학생운동과는 이 부분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생겼다. 서울에서는 [[서울역 회군]] 이후 방심하던 사이 5.17 쿠데타로 학생회 간부들이 긴급연행되면서 지도부가 사라져 제대로 된 저항이 불가했다. 하지만 광주에서는 미리 언질을 놓은 덕분에 학생들이 집결장소에 모일 수 있었다.] 학생들은 귀가하면서 집회 때 사용했던 물품들을 정리하고 쓰레기들을 청소하였고, 다음 날 새벽에도 청소를 이어갔다. >남도의 하늘을 아름다웠다 / (중략) / 페퍼포그가 멈추고 / 최루탄이 사라지던 날 / 무진벌의 백성들이 모여들었다 // 지식인이면 어떠냐 / 노동자면 어떠냐 / 농민이면 어떠냐 / 우리는 민주시민이다 // 가까이 가면 벌 받는다고 무서워하던 / 도청 앞 분수대 / 가만히 만져보고 / 부둥켜 안아보고 / 그대와 나 마주보고 웃는 모양 얼마나 좋으냐 // 어느 세상 이보다 아름다운 노래 있으리 / '''모두가 한 입 되어 외쳐 부르는 민주의 노래''' / 서기 천구백팔십년 오월 십육일 / '''우리는 여기 도청 앞 광장을 민주의 광장이라 명명했다''' // 그리고 영원한 민주의 행진을 위해 횃불을 들었다 / (후략) >---- >5월 16일 집회에서 낭송된 시 [[http://www.518archives.go.kr/books/ebook/1/#page=736|「민주의 나라」]] 일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